[이코노믹데일리] 세계보건기구(WHO)가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을 발암물질로 분류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국내 식음료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아스파탐은 설탕의 약 200배 감미를 내는 것으로 알려진 식품 첨가물이다. 아주 적은 양을 사용해 단맛을 강하게 낼 수 있고 칼로리도 없기 때문에 ‘0(제로) 칼로리’ 마케팅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일부 제로 음료와 막걸리 등에 아스파탐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국내 식음료 업계도 부정적 인식에 따른 매출 직격탄을 피하기 위해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선 상태다. 아스파탐이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가 확정될 경우 제로 제품 전체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제로 음료 이미 인기인데”…때 아닌 아스파탐 논란, 왜?
아스파탐은 지난 1965년 미국의 화학자 제임스 슐래터가 궤양 치료제를 개발하던 중 우연히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수십 년간 아스파탐의 안전성을 둘러싸고 많은 연구와 논의가 이뤄졌지만, 지금까지는 ‘적정량 섭취 시 안전하다’는 판단이 지배적이었다.
아스파탐은 현재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약 200여개국에서 사용을 승인 받아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승인한 인공감미료 22종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80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도 아스파탐이 안전하다고 인정하고 일일 권장량을 제시하기도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아스파탐의 일일 허용 섭취량을 체중 1㎏당 하루 50㎎으로 정하고 있다. 이는 60㎏ 성인의 경우 하루 2400㎎ 이하로 섭취해야 하는 수준이다.
아스파탐은 강렬한 단맛을 가지면서도 칼로리가 거의 없고 사카린과 같은 쓴 뒷맛이 없어 다이어트에 민감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다이어트 탄산음료, 주류 등에 주로 사용된다. ‘무설탕’이 붙은 제품들이 대체로 아스파탐이 쓰였다고 보면 된다. 코로나19 이후 건강을 생각하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열풍과 맞물리면서 제로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집중 소비가 이뤄졌다.
하지만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로이터통신이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할 예정이라고 보도하면서 새 국면을 맞은 모습이다.
IARC는 각종 환경 요소의 인체 암 유발 여부와 정도를 5개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아스파탐이 속할 예정인 2B군은 ‘사람에게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납, 쿠멘, 디곡신, 이소포론 등이 포함된다. 2B군은 인체 관련 자료가 제한적이고 동물 실험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다.
식음료 업계 한 관계자는 “아스파탐이 학계 자료나 식약처가 승인한 22개 첨가물에 들어있던 물질이라 안심하고 썼는데 갑자기 발암 얘기가 나와서 당혹스런 입장”이라며 “아직까지 아스파탐에 대한 기준이 바뀐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관계부처에서 지침이 나오면 그에 따라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요 음료 중에서는 ‘펩시 제로슈거 3종(라임·망고·블랙)’이 아스파탐을 함유하고 있다. 코카-콜라 제로, 스프라이트 제로, 환타 제로 등 인기 제로 탄산음료는 아스파탐이 아닌 ‘아세설팜칼륨’과 ‘수크랄로스’로 설탕을 대체했다.
펩시 제로를 유통하는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펩시 제로 원액은 글로벌 펩시에서 들여와 판매하고 있어 글로벌 펩시와 이 사안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류 중에는 국내 막걸리 상당수에 아스파탐이 소량 들어있는데, 막걸리 업계는 아스파탐의 전면 교체를 검토 중이다. 국내 주요 막걸리 업계 중에서는 서울장수와 지평주조, 국순당 등이 단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아스파탐을 소량 사용하고 있다.
업계 1위인 서울장수는 달빛유자 막걸리를 제외한 모든 제품에, 지평주조는 지평생쌀막걸리, 지평생밀막걸리 2종에, 국순당은 생막걸리, 대박 막걸리 2종에 아스파탐이 함유돼 있다. 함량은 제품마다 차이가 있으나 미국 식품의약품(FDA) 기준 일일 허용 섭취량(성인)에 따라 1병당 허용량의 2~3%정도만 함유하고 있다.
막걸리업계는 아스파탐이 극소량이라 문제가 없기는 하지만, 위해성 논란이 일고 있는 만큼 대체제를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또 각 제조사 별로 따로 대응하기 보다는 공동 대응 기준을 마련해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 아스파탐 위험하니 다시 설탕음료 복귀?…전문가 “더 위험해”
식약처는 국내 아스파탐 섭취량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며 ‘감미료 포비아(공포증)’ 차단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식약처가 지난 2019년 조사한 한국인의 평균 아스파탐 섭취량은 하루에 약 0.048mg/kg, 일일섭취허용량의 0.12%에 불과하다. 또 2022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섭취량도 하루 0.019mg/kg 수준이다.
아스파탐의 안전성은 지난 1981년 식품첨가물 전문가위원회에서 평가돼 일일허용섭취량을 체중 1kg당 40mg으로 설정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체중 60kg의 성인이라면 하루에 2400mg까지 섭취할 수 있다. 아스파탐이 든 다이어트 제로 음료를 하루에 10~30캔 정도 마셔야 하는 양이다. 이럴 경우 발암가능물질로 지정돼 주의가 필요하지만, 일상생활에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스파탐은 체내에서 대사 과정을 거쳐 아스파트산(40%)과 페닐알라닌(50%), 메탄올(10%)로 분해된다. 일부 의료계 전문가들은 아스파탐 대사과정에서 메탄올 발생비율이 낮지만, 다시 간에서 대사돼 폼알데하이드 같은 1군 발암물질로 분해되기 때문에 잠재적 위해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제로 칼로리 제품을 즐겨 먹어온 사람이 다시 설탕·당류·시럽 제품으로 돌아가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설탕은 보통 1일 허용량 보다 더 많이 섭취된다. 일반 캔콜라 두개와 케이크 하나 섭취 시 일일 허용치의 3~4배 정도의 설탕을 섭취하는 것과 같다. 설탕을 과용량 섭취 시 유방암 위험은 93%, 대장암 위험은 222%, 췌장암은 317% 더 높아지기 때문에 다시 설탕으로 돌아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이번 WHO 보도와 관련해 식약처 관계자는 “아직 특별한 조치를 내놓기 이르다”며 “오는 14일 WHO 산하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의 결론을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IARC의 정확한 연구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만큼 신중히 판단하겠다는 분위기다. 또 WHO의 연구결과와 미국, 일본, 영국 등 해외 국가들의 동향도 종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IARC가 아스파탐을 ‘사람에게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2B군)’로 분류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예측이다.
예컨대 한국만 독자적으로 아스파탐 사용을 금지하게 되면 국내 기업 뿐 아니라 해외 제품도 수입을 금지해야 하는데 이 경우 해당 기업이 WTO에 제소하는 등 국제무역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각 나라가 자의적으로 기준을 달리하기 어려운 이유다.
2B군 분류가 암을 유발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보건당국이 독자적인 판단을 유보하는 이유다. 이 등급에는 김치나 피클이 포함돼 있다. 이보다 높은 등급인 1군에는 술·담배 뿐 아니라 햇볕을 쬐면 노출되는 자외선을 비롯해 미세먼지·X선 등이 포함돼 있다. 과도한 섭취나 노출이 문제이지 일상생활에서 문제될 것은 없다는 지적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IARC가 아스파탐을 2B군으로 분류하더라도 현재 평균 수준으로 매일 평생 먹어도 안전하다는 것이 보건당국의 판단”이라며 “업계의 수용 가능성과 수입제품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면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규범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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