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저탄소로 가는 길은 어려워'…원자력 앞에 양분된 유럽국가들

박경아 기자 2023-04-25 06:00:00
독일 탈원전 국가 선포 몇시간 만에 핀란드에선 유럽 최대 단일 원자로 가동 시작 EU 그린텍소노미에 원자력 포함에도 독일 주도 반원전· 프랑스 주도 친원전 갈등 그린텍소노미 분류에 따라 우리나라도 소형모듈원전 개발 가속

독일이 15일 자정(현지시간) 모든 원전 가동을 멈추고 탈원전 시대로 들어가자 16일 낮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반원전 운동가들이 진열한 원자력 괴물 조형물의 모습.  같은 시간 문 반대편에서는 원전 가동 중단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독일이 지난 4월 15일 자정(현지시간)을 기해 자국 내 마지막 원자로 3기 작동을 중단, 완전한 탈(脫)원전 국가가 됐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핀란드에서는 유럽 최대 원자로가 건설 시작 18년 만에 가동을 시작했다. 이는 지난해 7월 원자력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하는 그린 텍소노미(green taxonomy)가 유럽연합(EU) 의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각 국의 친원전·반원전 정책에 따라 유럽이 양분된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뉴스1이 지난 17일 인용 보도한 AFP통신에 따르면 핀란드의 새 원자로 올킬루오트 3호기는 1600MW(메가와트) 용량으로 핀란드 전력 14%를 담당한다. 단일 원자로로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로, 향후 60년 동안 운영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점령해 안전에 우려가 제기돼 국제원자력기구(IAEA)까지 출동하게 만든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이 유럽에서 가장 큰 원전이다. 발전 용량이 5700MW에 달지만 이는 6개 원자로 용량의 합이며 단일 원자로 용량은 950MW, 올킬루오트 3호기의 60% 수준이다.

◆ 국민 여론과 같이 가는 핀란드 정부 vs 여론과 반대로 가는 독일 정부

핀란드에서는 지난해 5월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핀란드인의 60%가 원자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독일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독일인의 59%가 원자력 폐쇄에 반대하고 34%만이 원자력 폐쇄에 찬성한다는 점이다.

BBC는 독일에서 4월 3째주 실시된 ARD-도이칠란트 트렌드 여론조사 결과 이 같이 독일 정부 결정과 반대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며 "독일의 탈원전 이후 첫 토요일인 지난 16일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반원자력 운동가들이 승리를 자축하는 동안 문 반대편에서는 독일 정부의 원전 폐쇄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로 직결되는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해 지난해 극심한 에너지난에 시달린 독일 국민들 사이에 반대 여론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독일 정부가 예정대로 마지막 남은 3기의 원전 폐쇄를 결정의 출발점은 1970년 반핵 운동을 시작한 녹색당이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2002년부터 탈원전을 모색해왔으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는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탈원전을 가속화했다. 녹색당이 참여한 현 3당 연립정부도 같은 맥락의 길을 걸어왔다. 

독일의 에너지 구조도 원전 폐쇄에 영향을 끼쳤다. 지난 해 기준 독일 전력의 44%를 재생 에너지에서 얻고 있으며 원자력에서 얻는 전력은 6%에 불과했다.
 
◆ 위험 요소에도 불구, 탄소 배출 제로·저비용 친환경 에너지인 원자력
 
원자력은 사고 발생 시 방사능 누출이란 위험이 있고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부담이 크다. 하지만 화석 연료나 태양광·풍력 등 재생 에너지와 비교해 발전 비용이 저렴하고 탄소 배출을 하지 않아 기후변화 대응에 적합한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에너지난과 더불어 한층 강해졌고 EU에서도 결국 그린 텍소노미로 분류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유럽 최대 경제 대국 독일은 EU 내에서 탈원전을 계속 주장, 지난달 28일 EU가 원자력을 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에 편입하는 문제를 두고 프랑스를 필두로 한 친원전 국가들과 맞서다 결국 운송·산업 분야에서 원자력 기반 수소 생산도 화석연료 감축 활동으로 인정하는 타협안이 나오게 됐다. 

EU가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앞장선 지역이지만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EU 생산 전력의 25%가 원전에서 나왔다. EU 27개 회원국 중 13개국에서 운영하는 원자력발전소 103기가 생산하는 전력이다. 

프랑스는 대표적인 친원전 유럽 국가로 꼽힌다.  프랑스는 2021년 원전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기존 정책을 버리고 기후변화 대응을 이유로 신규 원자로 건설 재개를 선언했다. 지난해 9월 기준 프랑스에는 56기 원전이 가동 중이며 오는 2035년까지 6기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2021년 기준 EU에서 생산되는 원자력 발전량  698.9TWh(테라와트시) 중 절반 이상인 363.4 TWh가 프랑스에서 생산됐다.  

유럽에서 프랑스와 같이 친원전을 표방한 나라는 루마니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이며 독일와 같이 반원전을 주장하는 국가들은 오스트리아, 에스토니아, 덴마크, 네덜란드, 스페인 등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이 에너지 비용으로 몸살을 앓은 뒤 입장을 바꾼 국가들도 있다. 

벨기에는 2003년 탈원전을 선언하고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단계적으로 중단할 계획이었으나 지난해 원전을 10년 더 가동하기로 했다. EU에서 탈퇴한 영국도 우크라이나 전쟁 전 2030년까지 원전을 1개만 남기고 폐쇄하려 했으나 전쟁 이후 원전 비중을 15%에서 25%로 상향하기로 하고 2050년까지 최대 8기를 더 건설할 계획이다.

◆ 최다 원전 보유국가 미국, 원자력 통해 '새로운 기회' 찾는 한국

독일이 기후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원전이란 저탄소 에너지원을 끈 것은 비합리적이란 전문가 지적도 있다. 미국 산타바라라 캘리포니아대 기후및에너지정책학과 레아 스톡스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재생 에너지를 늘리는 동시에 기존의 안전한 원자로를 계속 운영해야 한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이 지난달 발표한 연간 에너지 전망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원 중 원자력은 8% 수준.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92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프랑스·중국이 각각 56기로 공동 2위다. 우리나라는 25기를 운영 중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지난 19일 캐나다 앨버타주 정부와  소형모듈원전(SMR) 스마트를 앨버타주 탄소 감축에 활용하기 위한 상호협력 협약을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체결했다. [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한편 우리나라는 기존 원전보다 좀더 안전한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힘을 쏟고 원자력으로 청정수소를 생산으로 방향으로도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7일 ‘청정수소 인증제 설명회’를 개최하고 청정수소 인증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으로 '수소 kg 당 4kg 이하의 이산화탄소에 상응하는 온실가스 배출'로 설정하고 청정수소 등급을 발표했다. 원자력으로 만든 수소는 청정수소 가운데 등급이 낮긴 하지만 핑크수소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2년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받은 한국형 SMR 스마트로 해외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SMR은 프랑스 기술력이 가장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후발 주자지만 중동 수출 이후 최근 캐나다 진출까지 모색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지난 19일 캐나다 앨버타주 정부와  SMR 스마트를 앨버타주 탄소 감축에 활용하기 위한 상호협력 협약을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비대면 협약식에는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원장과 브라이언 진 앨버타주 정부 일자리·경제·북부개발 장관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