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더현대 서울’로 승승장구하던 현대백화점그룹이 유통업계 내 ‘중대재해처벌법 1호’ 오명 기업의 기로에 섰다. 지난 26일 대전 유성구 용산동 소재 현대프리미엄아울렛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비판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이번 사고의 관건은 현대백화점이 아울렛을 운영하는 데 있어 중대법에서 명시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했는지의 여부다. 화재 원인이 아울렛에 있지 않더라도 사고 예방을 위한 필요 조치를 미리 하지 않았다면 사업주를 직접 처벌할 수 있다.
특히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이 지난 6월 소방시설 점검에서 24건의 사항이 적발돼 시정 조치 처분을 받은 만큼 화재 발생 전 지적 사항이 개선됐는지 여부도 중요해졌다. 다만 이번 화재가 작업 환경이나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산업재해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나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소지가 없어진다.
중대법 위반 유무를 가리기까지 앞으로 수 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화재 현장 합동 감식 결과가 주목된다.
◆ 지하 하역장 근처서 불꽃·연기…스프링클러 작동됐나
소방본부는 최초 발화 지점을 지하주차장 하역장 인근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때 지하 주차장에서 충전중이던 전기차가 폭발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불이 하역장 근처에 있는 압축된 폐지 더미와 상자들에 삽시간 옮겨붙으며 4만㎡(1만2100평) 규모의 지하층 전체를 연기와 유독가스로 가득 채웠다.
종이 상자와 의류 등 인화성 물건이 타면서 내뿜는 연기가 건물 전체를 휘감으면서 피해를 키웠고, 화재 진압과 실종자 수색을 더욱 어렵게 했다. 지하 주차장 곳곳에 방치된 종이박스 등이 화재 시 위험하다는 민원이 수차례 제기됐지만 그대로 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현대아울렛은 지난 6월 소방시설 점검에서 24건의 사항이 적발돼 시정 조치 처분을 받았다. 지하 1층 주차장 화재 감지기 전선 상태가 불량하다는 등의 내용을 지적을 받았다.
현대아울렛 측이 지적 사항을 제대로 시정했는지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 이날 보도된 한국일보 단독에 따르면 현대아울렛 화재 당시 지하주차장 내 설치된 소화전에서 물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하 화재 현장으로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소화전이 작동하지 않은 탓에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수관을 소방차에 연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화전이 작동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스프링클러와 옥내 소화전은 물 공급 배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또 지하 화재를 첫 목격한 사람이 지나가던 행인인 것으로 미뤄 보아 초기에 스프링클러 등 소방 시설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화재 발생 지점이 스프링클러의 물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인지 고려해봤을 때도 스프링클러 설치 자체를 면적끼리 물이 닿도록 설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체 측은 화재 발생 후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했다는 설명이다. 화재 현장에서 대피한 사람들도 적재물품과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고 목격담을 얘기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방재 시설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화재로 280여 점포 피해, 손실규모 클까
이번 화재로 인한 연기가 순식간에 지상으로 번지면서 현대아울렛에 입점한 280여 점포가 피해를 입었다. 아울렛에 입점한 유명 브랜드 매장의 피해가 속출했으며, 해외 명품 매장의 피해도 큰 상황이다.
고가의 의류와 가방 등 명품 제품들이 연기에 그을리거나 냄새가 배면서 상품 가치를 잃었다.. 현재 현대아울렛에는 프라다와 발렌시아가, 생로랑, 몽클레르, 아르마니, 에르메네질도 제냐 등 명품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도 다수 입점해 있어 손실 규모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LF 관계자는 이번 화재와 관련해 “소방당국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매장별 피해 규모 파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매장 직원과 관련한 인명 피해가 없어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오롱FnC 관계자는 “아울렛에 입점한 자사 브랜드 매장이 화재가 났던 곳의 반대편에 위치해 관련 피해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으며 삼성물산 패션 관계자도 “자사의 소수 브랜드가 입점해 있지만 피해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현대백화점 측은 “현재 아울렛 내부로 접근이 불가능해 정확한 피해 규모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1층과 2층에 입점한 음식점 피해도 이어졌다. 박스와 의류 등 인화성 물건이 타면서 내뿜는 연기가 건물 전체를 휘감으며 피해를 키웠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정지선 회장 등 경영진을 필두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현장에서 소방당국과 협조해 상황 파악과 대응에 힘을 싣고 있다.
정 회장은 전날 화재 발생 직후 현장을 찾으며 유가족들에게 애도와 사죄의 뜻을 밝혔다. 정 회장은 “이번 사고에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한다”며 “향후 경찰서, 소방서 등 조사에 성실히 임하며 어떠한 책임도 회피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이번 화재 사고와 관련 추측성 보도 등 혼선을 막기 위해 가급적 언론 대응을 자제하고 관계 당국에 맡기는 한편, 다른 전국 점포들엔 다시 한 번 현장 안전점검에 충실히 임해달라는 취지의 당부 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Copyright © 이코노믹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