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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규의 금융만사] 이빨 빠진 호랑이와 맷집 세진 금융수장

김남규 시장금융부 부장 2021-03-10 14:46:56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사진=아주경제DB]

[데일리동방]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이 금융감독원의 잇따른 금융수장 징계와 관련해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금융권 내 이슈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던 그간의 은행연합회와 대조적인 행보다. 관련업계에서는 김 회장의 노골적인 불만 표출은 실추된 금융당국의 권위를 방증하는 것이며, 동시에 현 정부에서 축적된 관치금융 피로도가 표출된 현상으로 보고 있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9일, 서울시 중구 소재 은행회관에서 진행한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최근 잇따른 금감원의 금융사 CEO 중징계가 법원의 원칙과 거리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취임 100일을 기념해 진행된 이번 간담회에서 김 회장은 은행권에 쌓인 불만을 대변하는 형식으로 감독당국과 날을 세우며 사실상 개인의 존재감을 높이는 첫 자리가 됐다.

이날 김 회장은 “대표이사를 감독자로 징계하는 감독 사례가 상당히 보이고 있다”며 “그렇게 되면 은행장이 모든 임직원의 행위를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사실상의 결과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징계와 같은 ‘침익적 행정처분’은 금융사가 충분히 예측가능성을 가질 수 있도록 비교적 관련 규정 또는 법규 문언에 충실하게 적용되는 것이 필요하다”며 “감독행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일방적 관계가 아닌 상호 소통하고 존중하는 감독행정이 이뤄져야 보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경영활동을 위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도 했다.

김 회장의 돌직구 발언은 임기 말 곤혹을 치르고 있는 윤석헌 금감원장의 좁아진 입지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2018년 5월, 국회의원 시절 외유성 출장과 임기 말 셀프 후원금 논란으로 2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김기식 전 원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지휘권을 잡았다.

당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원장의 취임을 두고 “금융권이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라고 치켜세웠을 만큼, 그가 금융개혁을 추진할 적임자라는 시장의 기대감은 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윤 원장의 리더십 부재 문제는 곧 표면으로 드러났다. 내부적으로는 감독원 조직 관리에 실패했다는 곱지 않은 지적이 이어졌고, 외부적으로는 금융위와는 불필요한 갈등을 키워 스스로 금감원의 입지를 좁혔다는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민을 분노케 한 사모펀드 사태 해결 과정에서도 윤 원장은 금융감독 기능의 공백을 찾아 채워 넣으려는 노력보다 금융기관의 내부통제 부실만을 문제 삼아 해당 금융기관 CEO들에게 중징계를 남발해 금융감독 수장으로서의 책임감 부재를 드러내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그동안 보폭을 맞춰왔던 노조와의 마찰도 심화되고 있다. 임기 만료를 2개월을 앞둔 현 시점에서 금감원 노조 측은 과거 채용비리 연루자들을 승진시킨 윤석헌 원장을 검찰에 고발할 태세다. 원만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 노조가 윤석헌 원장을 검사에 고소하면 역대 금감원장 중 최초로 내부 인사 비리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는 최악의 오명을 쓰게 될 수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금융당국의 칼끝이 향했던 금융권 수장들은 차례로 연임에 성공하면서 오히려 느긋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까지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이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고, 김도진 기업은행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비은행권에서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등이 제재심을 진행 중이다.

이외에도 박정림 KB증권 사장이 문책경고를, 나재철 전 대신증권 사장(현 금융투자협회장),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사장, 윤경은 전 KB증권 사장 등이 직무정지에 해당하는 중징계를 받았지만, 해당 인물의 상당수가 현직에서 연임에 성공하면서 금융 그룹 내에서 구축한 입지가 건재함을 증명했다.

금융권 내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감독당국의 잦은 중징계가 오히려 징계의 약발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이 금융권 내 CEO의 대대적인 물갈이 작업을 강제할 수 없는 현실적인 구조를 고려할 때, 중징계를 받은 CEO들이 일단 버티고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부작용만 커졌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의 CEO 중징계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 내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최근 금융권 안에서 CEO 중징계 사안이 빈번한 만큼, 일단 타행의 대응을 지켜보며 법적 대응으로 버텨보자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개혁을 추진할 적임자라며 극찬 받던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임기 두 달을 앞둔 지금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될 수 있는 처지로 전락했다. 금융기관 수장을 향했던 그의 날카로웠던 호랑이 발톱에서 더 이상 상대방을 압도하는 위엄이 사라진지 오래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