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명예회장은 4월 16일 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퇴진을 선언했다. 동원엔터프라이즈 대표이사였던 박인구 부회장도 자리에서 물러나 그룹 내 변화가 예고됐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두 사람과 함께해온 박문서 사장이 앉았다. 회장직은 공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도 동원의 동일인(총수)을 김재철 명예회장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승계는 마무리 단계로 관측된다.
◆현장을 이해하는 후계자
공시대상 기업집단 48위인 동원그룹은 지주회사 동원엔터프라이즈가 동원F&B(식품가공・71.25%), 동원산업(원양어업・59.24%), 동원시스템즈(포장재・80.39%) 등 주력 자회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국내외 계열사는 44곳이다.
동원산업은 국내 최대 규모 선망선단으로 원양어업 부문 시장점유율 1위(42.32%)를 지키고 있다. 국적선은 참치 선망선・연승선, 지원선과 트롤선, 운반선 등 32척이다. 합작선망선 2척에 해외 자회사 선망선 4척, 해외 자회사 운반선 2척을 합치면 총 40척에 달한다. 2017년 동부익스프레스 인수로 물류 부문 사업 기반도 강화했다.
동원F&B는 올해 상반기 국내 참치캔시장에서 78.9% 점유율을 기록해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이밖에 육가공과 음료, 사료 사업도 한다. 포장재 사업을 하는 동원시스템즈는 2014년 국내 유리병시장 1위 테크팩솔루션 인수로 역량을 높였다.
김남정 부회장의 동원엔터프라이즈 지분은 67.98%다. 압도적인 지분율로 실질적인 승계가 끝났다고 평가된다. 김재철 명예회장(24.5%)과 동원육영재단(4.99%) 등 특수관계인, 친인척 지분율을 합치면 99.56%에 이른다. 아버지와 함께 회사를 이끌어온 전문 경영인들과 역량을 키우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 부회장은 눈에 띄는 대외활동은 삼가는 대신 시대 흐름을 꿰뚫는 마케팅을 펴고 있다. 동원참치는 최근 감각적인 화면과 노래를 내세운 광고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동원은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과 차남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이 각각 금융과 식품을 맡는 식으로 후계 구도가 짜였다. 승계는 2004년 산업과 금융 계열 분리로 본격화됐다.
김재철 명예회장은 엄격한 현장교육으로 유명하다. 경영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애환을 알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김남정 부회장은 1996년 동원산업 생산직에 입사해 부산 참치통조림공장에서 참치캔 포장과 창고 야적 등을 맡았다. 동부영업소 영업사원으로도 일했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은 뒤 귀국해 2004년 동원F&B 마케팅전략팀장으로 경력을 이어갔다. 이후 2006년 동원산업 경영지원실장, 2008년 동원시스템즈 경영지원실장, 2011년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 등을 지냈다. 동원그룹 부회장직은 2013년 12월에 올랐다. 지난해 11월부터 동원엔터프라이즈와 동원F&B 사내이사로 재직중이다.
장남 김남구 부회장도 고대 경영학과 4학년인 1986년 가을 알래스카행 명태잡이 원양어선을 탔다. 1991년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지점 대리로 발령받았다. 2011년부터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재직중이다. 그는 금융으로 독자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동원엔터프라이즈 지분도 갖고 있지 않다. 김 부회장의 장남도 올해 영업지점 사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원그룹 경영 구도는 선대와 마찬가지로 지주사 동원엔터프라이즈가 전략과 방향을 잡고 계열사는 독립 경영하는 현 체제가 유지될 전망이다.
동원그룹은 순항중이다. 동원엔터프라이즈 영업이익은 2015년 2424억원에서 2016년 3867억원, 2017년 4139억원으로 올랐다가 지난해 3363억원으로 떨어졌다. 다만 지난해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은 연결기준 1799억480만2747원에서 올해 상반기 2153억4143만8287원으로 늘었다.
주력 계열사 동원산업 영업이익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2015년 573억원에서 이듬해 1514억원, 2017년에는 2246억원으로 뛰었다가 지난해 1777억원으로 꺾였다. 올해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은 1153억9956만7015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999억1753만5879원보다 늘었다.
이 기간 동원산업은 2016년 어가 반등과 생산 효율성 증가로 수익을 높였고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에 따른 매출 증가 영향도 받았다. 2017년 강세를 보이던 참치어가는 지난해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유통과 물류 매출액 증가로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 미국 자회사 스타키스트와 동부익스프레스, 수산사업 부문 매출 증가로 1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6052억원에서 6738억원으로 올랐다. 동원산업은 수익성 변동이 심한 원양어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8년 스타키스트와 2017년 동부익스프레스 인수로 유통과 물류 수익성을 강화했다. 수산사업부문 영업이익 비중은 2017년 36.45%에서 올해 1분기 21.33%로 줄었다. 반면 유통사업 부문은 같은 기간 37.04%에서 49.31%로 뛰었다. 물류사업도 25.55%에서 27.72%로 올랐다.
김남정 부회장은 2013년 취임 이후 적극적 인수합병으로 동원을 수산・식품・종합포장재・물류 4개 축으로 둔 종합식품회사로 키우고 있다. 동원시스템즈는 대한은박지(2012년), 한진피앤씨(2014년) 테크팩솔루션(2014년), 아르다 메탈 패키징 아메리칸 사모아(現 탈로파시스템즈, 2014년), 베트남 포장재기업 탄티엔패키징(TTP)과 미잉비에트패키징(MVP・각 2015년) 인수로 연포장재와 기능성 필름, 페트병, 캔, 유리병, 알루미늄을 아우르는 주요 종합포장재 기업이 됐다.
선단 현대화도 주도하고 있다. 동원산업은 2014년부터 올해까지 신규 선망선 6척을 건조했다. 김 부회장은 지난 7월 16일 동원산업의 2200t급 헬기탑재식 선망선 주빌리호 출항식에 참석했다. 9월에도 2200t급 최신 선망선 본아미호 출항을 지켜봤다.
1991년부터 반려동물 사료를 만들어온 동원F&B는 ‘뉴트리플랜’이 올해 한국산업 브랜드파워(K-BPI) 펫푸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국내 동물병원 전문 1위 유통업체 CHD와 손잡고 동물병원 판매 상품 ‘아미노레딕스 캣’과 ‘뉴트리메딕스 독’을 내놨다.
늘어나는 차입금과 높은 내부거래 비중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다. 동원그룹은 올 6월 금융감독원이 선정한 ‘주채무계열(부채가 많은 기업집단을 주채권은행으로 하여금 통합 관리하게 하는 제도)’ 30곳 중 27위에 올랐다. 그룹 계열사 차입금 축소와 부채비율 완화에 힘써야 한다. 주채무계열로 선정된 기업은 채권단 재무구조를 평가 결과가 미흡할 때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게 된다. 이후 자산 매각과 자본 확충 등 재무구조 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
지주사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순차입금은 2016년 1조2221억4910만2586원에서 지난해 2조2223억9367만4263원으로 뛰었다. 올 6월 기준 순차입금은 2조924억3523만3998원이다. 2017년 동부익스프레스 인수(4162억4200만원)와 양재동 사옥 매입 등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력 회사인 동원산업 순차입금도 같은 기간 4569억원에서 1조57억원으로 올랐다. 올 6월 기준 순차입금은 1조450억1227만9488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물류기업 BIDC 인수에 370억5240만원을 썼고, 스타키스트의 미국 내 가격담합 형사 벌금은 1억달러로 결정됐다. 스타키스트는 벌금을 5년간 나눠 낼 예정이다. 소매업체들과의 관련 민사소송은 아직 진행중이다. 동원산업은 1분기 중 합의된 소매업체에 4025만달러를 지급했다.
동원엔터프라이즈의 내부거래 비중이 지난해 77.52%에서 올해 41.12%로 줄었지만 공정위 사익편취 규제대상에는 계속 이름이 오른 점도 부담이다.
김재철 명예회장은 퇴임사에서 닐 암스트롱을 언급했다. 선진국이 달에 도전한 1969년 원양어선 한 척짜리 회사 동원은 바다 한가운데서 참치를 기다렸다. “엄청난 역사 발전의 갭(Gap)”이었다. 훗날 참치왕으로 불린 젊은이는 바다에 미래가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50년 뒤 자리에서 물러나며 정도(正道)를 두 번 언급했다. 반세기 경영 끝에 내린 결론이다. 후계자를 향한 당부이기도 하다.
2세 시대 동원의 정도는 무엇인가. 62억 참치캔으로 지구 12바퀴를 둘러낸 아버지가 묻고 있다. 대기권 밖을 내다보는 발상이 김남정 부회장의 회장 취임사에 적히더라도 방향이 의심받지 않는 토대를 쌓아야 한다.
Copyright © 이코노믹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