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 작품이면서도 회화가 아니고, 인물을 조각하면서도 형태가 없어진다. 그러면서 예술적 아이디어를 3D스캐닝과 컴퓨터 절삭을 통해 구현해 냈다.
국내 대표 갤러리인 313 아트 프로젝트가 서울 청담에 이어 성북에 문을 열면서 개관전으로 프랑스 작가 자비에 베이앙(55·Xavier Veilhan)을 선택했다.
자비에 작가의 개인전 'Xavier Veilhan'이 2월 15일까지 열린다. 그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에 있는 대형 모빌작품 '그레이트 모빌'(Great Mobile)을 설치한 작가이기도 하다.
지난 10일 찾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313 아트 프로젝트 성북'은 어느 정도 리모델링이 끝난 상태였다.
아파트 사이에 있던 브런치 카페를 인수해 꾸민 갤러리는 기존의 건물 뼈대를 살리면서 세련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단번에 주변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이 되면서 동네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이미금 313 아트 프로젝트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80% 완공된 상태에서 개관전을 오픈했다. 3월 두 번째 전시 때는 완공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이라며 "성북점이 만들어지면서 자비에 전시를 시작으로 3월 제여란, 4월 플로리앙&마키엘 키스트르베르, 5월 박기원 전시 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제여란 작가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갤러리에서 전시를 여는 것이며, 플로리앙&마키엘 키스트르베르는 이 대표가 3년간 따라다닌 끝에 전시가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개관전의 주인공인 자비에는 2009년 프랑스 베르사유 Chateau de Versailles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프랑스의 대표 작가로 부상했다.
그는 2014년 313 아트 프로젝트 청담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이번이 두 번째 한국 개인전이며,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전시 이후 2년 만의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평면과 조각으로 구성해 성북점에 15점, 청담점에 3점을 설치했다.
▶실내 환경에 어울리는 평면·조각 작업
작가는 최근에 다양한 예술영역을 포괄하는 실험적인 작업을 많이 해왔는데, 이번 전시는 방향을 조금 달리해서 실내 환경에 어울리는 평면 작업이나 조각 작업을 했다. 특히 조각이라는 전통적인 장르에서 다양한 표현을 하는 실험적인 제작 과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자비에 베이앙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작품은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전시했던 것에서 영감을 받아서 준비했다" 며 "인천 제2여객터미널에 설치돼있는 모빌과 같이 크기가 큰 작품들 위주로 하다가 이번 전시는 가정환경에 맞게 크기를 줄였지만 그만큼 알차고 좋은 작품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 작품은 기존 작품보다 크기가 작아지면서 작품의 방향도 달라졌다.
자비에는 "크기가 큰 작품의 경우는 제작 과정에서 안전상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도 많지만, 작은 작품과 제작 과정은 비슷하다" 며 "작품이 좀 더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는 작품인지, 집안에 어울리는지에 초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현재 큰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스위스에서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다리를 디자인하고 있다고 한다.
▶조각 같은 평면 작품
전시장에는 'Ghost Landscape'(유령풍경)라는 특이하게 생긴 평면 작품이 눈에 띈다. 유화도 아닌 것이 멀리서 보면 구름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검은색 점들만 보인다.
이 작품은 캔버스에 페인트를 칠해서 완성하는 일반적인 평면 작품이 아닌 재료를 깎아서 만든 작품이다. 3차원적인 조각의 공정이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자재 자체가 정직하게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조각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 검은색 플라스틱 배경을 깔고 그 위에 알루미늄을 두 번 깐 다음에 기계로 갈아서 점들이 나타나게 했다. 자재를 걷어내면서 작품이 완성됐다는 것이 재밌는 요소이다."
5년 동안 진행해온 대형 작품인 레이즈(Rays) 연작의 축소 버전도 흥미롭다.
철망을 연상시키는 레이즈는 가늘고 길 철사가 서로 엇갈려 격자무늬를 이루고 있다. 매우 큰 크기로 야외에 설치된 작품이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1m 내외 크기로 제작됐다.
"대형 크기의 작품이긴 하지만 그 사이로 틈이 있기 때문에 작품 건너편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보인다. 어떻게 보면 작품 사이로 투시할 수 있는 요소들이 중점인 작품이다. 이 거대한 작업을 집안에다 설치하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하고 축소 작품을 만들었다."
레이즈 축소 버전은 페인팅이 아닌 3D작업을 벽에다 거는 부조(relief)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야외에 설치된 작품과 마찬가지로 사이사이 틈이 많아서 그 뒤에 있는 환경도 볼 수 있게 제작했다.
▶추상으로 가는 조각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2m 10cm 크기의 카본(탄소)으로 만든 조각 작품 '마크(Marc)'가 중앙에 서 있고, 그 옆에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은으로 만든 나타샤(Natasa) 조각이 관람객을 맞는다. 1층 안쪽에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나타샤(Natasa)' 조각이 바닥에 앉아 있다. 2층에는 나무로 만든 '자나(Jana)' 조각 작품 두 점이 놓였다.
자비에는 조각의 재질에 큰 의미를 둔다. 카본의 경우 가장 이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원소이다.
"탄소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원소이다. 다이아몬드도 탄소를 압축해서 만든 것이고, 탄소가 우리의 존재의 기본이 되는데, 그러한 역사적인 자재로 현대적인 작품을 했다는 것이 재밌는 요소이다. 나무는 자연적이고 친환경적이다. 어떻게 보면 원래 살아있던 자재로 가장 모던한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재밌는 부분이다."
조각 작품은 서 있는 자세에 따라서 그 모델이 된 사람의 성격이나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나타샤'는 여성인데 자세가 남성적인 느낌이 난다. 다리를 벌리고 앉은 자세에서 팔은 다리에 걸치고 있다. 20년 전까지 이런 자세를 취했다면 굉장히 남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만 현대적인 여성은 이런 자세도 자연스럽다.
"시대의 느낌이나 그 사람의 성격을 잘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이런 자세를 정한다. 그리고 실제 모델이 친구이기도 한 나타샤와 마크 같은 경우, 그 사람의 성격 태도를 잘 나타내는 자세로 자연스럽게 해서 작품을 했다."
2층에 있는 '자나'는 특별한 인연으로 작품의 주인공이 됐다.
"모델 스캐닝을 하는 작업이 굉장히 복잡한데, 바로 직전에 모델이 취소됐다. 그래서 직원이 나가서 베니스 비엔날레에 돌아다니는 사람 중에 태도가 재밌거나 캐릭터가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데려온 사람이 자나이다. 자나를 스캐닝해서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가 작품 이름으로 풀네임이 아닌 '나타샤' '마크' '자나'처럼 퍼스트네임만 쓰는 이유는 관람객들이 자신이 아는 사람들을 투영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다.
조각의 구현 과정은 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 사진 촬영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요즘은 1초도 안 돼서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앉아서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은 과정이 길었다.
"먼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대상을 3D로 스캐닝한다. 15년 전만 해도 스캐닝 작업은 한 시간가량 걸렸지만, 지금은 기술이 발전해서 10분 내로 완성된다. 스캐닝한 다음에 자재를 고르고 컴퓨터가 달린 기계로 깎아내서 작품을 만든다."
조각 작품들은 눈, 코, 입이 없는 직선의 형태로 구현된다.
"자세한 형태보다는 나와의 관계에 초점을 많이 둔다. 그 사람의 기본적인 형태만 보면 그 시대, 그 문화, 그 사람들의 특성을 잘 나타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사람이 보일 수 있지만 가까이 접근해서 보면 현미경으로 비추는 듯이 모든 것이 추상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자체의 대상을 잃어버리고 추상의 개념으로 넘어간다."
자비에 베이앙의 평면 작품과 조각 작품은 하나의 큰 개념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평면 작품은 멀리서 보면 형상이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점들만 보인다. 비슷한 개념으로 조각 작품 또한 멀리서 보면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가까이 가면 선들만 보인다. 따라서 그의 조각은 추상적인 형태로 보이는 동시에 실제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신체적 존재감을 발산한다.
자비에의 공업적 요소와 예술적 요소가 결합한 독특한 작품을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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