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 영상톡]"어머니 끔찍한 사고 작품으로 태어나"..허은경 '보태니멀 가든' 아라리오갤러리

홍준성 기자 2018-05-11 12:26:04
-'보태니멀 가든 (Botanimal Garden)' 5월10일부터 6월24일까지

초록색의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오른 눈과 나뭇잎처럼 생긴 귀, 그리고 양파를 반으로 잘라 놓은 것 같은 몸통까지.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괴생명체들이 줄을 맞춰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허은경 작가의 개인전 '보태니멀 가든 (Botanimal Garden)'이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6월 24일까지 열린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141점의 보태니멀 회화 시리즈와 조각 1점, 대형 설치작품 1점 등 총 143점을 선보였다.
 
보태니멀(Botanimal)은 식물이라는 의미의 '보태닉(botanic)'과 동물의 '애니멀(animal)'을 합성해 작가가 만든 말이다.
 
즉 '보태니멀 가든'은 식물과 동물을 결합해 상상력으로 만든 괴생명체들의 놀이터인 것이다.
 
보태니멀 시리즈는 어머니의 간병이라는 허 작가의 개인적 이유와 환경오염이라는 사회적인 이유가 결합해 생겨났다.

[허은경 작가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 전시장서 만난 허은경 작가는 "6년간 중환자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어머니 병간호를 했는데, 그때를 말하기는 끔찍하지만 어머니가 심장병 기계를 달고 그것을 빼는 순간 다리가 썩기 시작했다" 며 "뼈까지 드러날 정도였는데 거기서 새살아 돋아 나는 것을 경험했다"고 입을 뗐다.
 
허 작가는 이어 "이상한 살들, 이상한 덩어리들이 어머님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너무 고맙고 심지어는 이쁘기까지 했다."라며 "이상한 미학적 경험으로 '미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다가 미학의 기준이 흔들리면서 이렇게 이형적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허은경 작가 작품]

보태니멀이 기형(기이하고 괴상한 모양)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허 작가는 '이형적'이라는 표현을 쓰며 애정을 드러냈다.
 
"환경호르몬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이 DNA 변형된 것들이 많다. 그 상태에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에너지가 아름다웠고 뭔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생명체 같은 게 이상하게 느끼기도 하겠지만, 이게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에너지가 너무 예뻐서 최대한 예쁘게 표현하려고, 에너지를 전달하려고 이런 형태를 만들었다."
 
2016년부터 시작해 약 200점이 탄생한 보태니멀 시리즈는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졌지만, 작가의 실제 경험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집안에 정원이 있었다. 식물은 안 보고도 그릴 수 있는 정도다. 아마 기억 속의 식물도 있을 것이고 색깔만 비슷하게 식물처럼 된 것도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시 허은경 작가 작품]

회화 작품은 크기가 균일하다. 그것도 아주 작은 사이즈(가로30cm,세로40cm)로.
 
허 작가는 "어떤 식물학자의 연구서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 나중에 책자로 보이니치 필사본처럼 식물학책을 만들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회화 작품을 전시한 전시장 입구에는 작은 입체작품 1점이 놓였다.
 
작품은 나뭇가지로 전체적인 형상을 만들었으며, 목단 씨껍질로 만든 뿔도 달렸다.
 
"목단이 영어로 'Tree Peony'인데 작품 이름은 '피오(PEO)'라고 읽으면 된다. 이것도 시리즈가 150개 이상 나왔는데 이름을 하나씩 지어줄 예정이다. 회화 식물들은 그냥 연구자료처럼 번호만 붙여줬다."
 
전시장 지하로 내려가니 방안을 온통 1개의 작품이 메우고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시 허은경 작가 작품]

천장부터 내려온 은사(銀絲)로 짜인 커튼이 있고, 커튼 끝 단에는 사슬 모양의 은색 줄이 매달려 있다. 또 그 아래에는 육각형 모양의 나무로 만든 관이 하나 놓여 있다.
 
'무제(Untitled)'인 이 작품에 '하늘아래 또 하늘'이라는 제목을 붙여 주고 싶다는 작가는 고통과 희생 속에서의 죽음과 탄생을 얘기한다.
 
"세상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을 동반한다. (은사로 만든) 두 개의 사슬이 사실은 아름답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것들을 같이 내포하고 있는 물질이다. 하나는 군번줄을 소형화해서 만든 거고 나머지 하나는 목걸이 줄로 사용하는 사슬이다. 누군가를 묶는 사슬이나 군번줄이나 둘 다 고통과 희생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아름답게 보이는 사슬은 사실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무덤은 모든 것의 끝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의 시작일 수도 있다. 시작과 끝이 동시에 만나는 그런 장소이다. 무덤 위를 뒤덮은 '이끼' 또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끼라는 게 시간하고 공간을 동시에 지배하는 식물인 것 같다. 몇억 년 전부터 존재했던 거고 제일 파워풀한 생명체자 가장 오래가는 생명체이다. 이끼를 갈아서 뿌려 놓으면 다시 살아난다. 이끼 자체가 어떤 흔적으로 살아갔을 것 같은 그런 시간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나도 누군가의 흔적으로 여태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귀를 기울이면 배경음악으로 물소리가 들린다.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려면 물이 항상 제일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넣었단다.
 
허은경 작가는 작품해설 말미에 작품 전체에서 흐르는 식물에 대한 예찬을 드러냈다.
 
"식물이 동물적인 기능을 가진 것 같기도 하고, 이 지구상에 가장 끝까지 남을 것들은 식물인 것 같고 더 우수한 생명체인 것 같기도 해서 식물에 대한 존경심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